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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리버와 함께하는 문화재 여행 (단원 김홍도) - 강원시청자미디어센터

2024-08-12



시각장애인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단 '리트리버 2기' - 강원시청자미디어센터


시각장애인의 문화재 접근성 향상을 위한 배리어프리 콘텐츠 리트리버와 떠나는 문화재 여행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리트리버와 함께 떠나볼까요? 



< 나래이션 내용 및 주요 내용>

리트리버와 떠나는 문화재 여행, 이번 달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리트리버와 함께 단원 김홍도의 그림 세계로 떠나볼까요?! 왕왕!
(자막. 리트리버와 함게하는 문화재 여행. 단원 김홍도편)

(자막.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
(자막. [마상청앵도] 출저 국가유산청 / [단원 충속도첩] 中 출저 국가유산청 / 연풍향교. 출처 괴산군청)
오늘은 단원 김홍도에 대한 소개 그의 작품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 순서로 알아보겠습니다

(자막. 1 단원 김홍도 소개)
(자막 [단원 풍속도첨] 中 '장터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화성원행의궤도] 中 '주교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병진년화첩] 中 '화조도' 출처 국립유산청 / [마상청앵도] 출저 국가유산청 / [백악춘효] 안중식,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경현당수작연도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영조어진]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풍속화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는 기록화 인물화 산수화 아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1745년 출생해 경기도 안산 부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대 유명했던 문인화가 강세황이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도화서의 화원으로 추천합니다. 도화서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던 관청 있니다. 기록에 따르면 단원 김홍도가 21살일 때 영조 주기 40주년을 기념한 경현당 수작도 그렸다고 합니다. 영조의 어진동 그릴 정도였으니 당대 뛰어난 그림 실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막. [고사인물도], [호응도], [활쏘기] 출처 국가유산청, 국립중앙박물관 / [병진년화첩] 中 '산수도' 출처 국가유산청 / [군선도 8폭 병풍] 출처 국가유산청 / )
단원 김홍도의 작품은 약 300점을 이르는데요 주로 서민들의 정서와 삶에 밀착된 그림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진경산수의 아름다움을 담은 을묘년 화첩, 병진년 화첩, 굵고 힘찬 느낌으로 그린 군선도 팔폭 병풍 등이 있습니다.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주악'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단원 풍속도첩] 中 '벼타작'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단원 풍속도첩] 中 '빨래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특히 그가 그린 풍속화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에 있어 의미가 큽니다. 사대부 문인 화가들은 유교이념과 거리가 먼 서민들의 삶을 저속하다고 여겨 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학의 영향과 신분 질서에 대한 대항이 커지던 조선 후기 회화에 이념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실제 기반의 그림이 자리를 잡습니다. 단원 김홍도 그 중심에 서서 섬세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로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었습니다.

(자막. 2 단원 김홍도 작품)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나룻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럼 단원 기도의 그림 세계를 잘 담고 있는 단원 풍속도첩 그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자막. 단원 풍속도첩. 출처 국가유산청)
이 화첩은 A4 용지와 비슷한 크기에 풍속도 25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 위에 그려져 현재에는 옅은 갈색으로 발했습니다. 이 화첩은 우리나라 보물 제527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기와이기' 출처 국가유산청 / [단원 풍속도첩' 中 '벼타작'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 [단원 풍속도첩' 中 '장터길'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 [단원 풍속도첩' 中 '활쏘기'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이 화첩에 있는 작품들은 먹물을 기본으로 하고 연한색을 보조적으로 사용한 수묵 담채화 있니다. 먹으로 그린 선은 힘 있고 간결할 하여 인물의 특징과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둥글넓적한 얼굴에 둥그런 눈매를 지닌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소탈한 서민상 표출해 내고 있습니다.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만으로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대상을 강조할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이들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의 사실적이고 해약이 넘치는 동작의 묘사가 또 다른 특징입니다. 이 화첩은 풍부한 상황 설정 절묘한 감정 표현 사회풍자 등 단순한 풍속 표현에서 나아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냈습니다. 풍속도 25점 중 대표적인 세 가지 작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씨름'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첫 번째 씨름합니다 힘찬 씨름꾼 즐겁게 구경하는 사람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의 전체적인 모습은 중앙의 중심을 둔 원형 구도입니. 그림의 위 아래에는 두 무리의 구경꾼들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어 가운데 공간이 열려 있습니다. 그 공간에 서로 맞붙어 힘을 겨루는 두 씨름꾼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네요. 그림의 왼쪽에는 엿장수가 서 있으며 오른쪽 옆에는 씨름꾼이 벗어놓은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습니다. 그럼 이제 자세하게 들어가 볼까요? 씨름꾼 먼저 설명한 뒤 시계 방향으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그림의 중앙에 위치한 두 남성은 버섯만 신은 채로 격렬한 씨름 경기를 치르고 있습니다. 한 명은 바닥에 다리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왼다리가 들려 곧 넘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합니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을 갑, 다리가 들 사람을 을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에서 왼쪽에 있는 갑은 강단 있는 눈빛으로 입을 굳게 담은 채 힘을 주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오른쪽에 있는 을은 미간을 찌푸리고 당황한 눈빛입니다. 갑은 그런 을을 배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자신의 몸을 살짝 돌려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 들배지기를 시도하고 있네요. 을은 오른 다리로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경기에 승패가 갈리는 순간으로 쩔쩔매는 을의 모습이 힘찬 값과 더욱 비교됩니다.이 씨름 꾼들은 누구일까요 ?모두 상투를 틀고 옅은 푸른색의 무명옷을 입고 있어 비슷한 신분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씨름꾼들이 벗어 놓은 신발을 통해 신분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4시 방향에 신발이 두 켤레 그려져 있습니다. 한 켤레는 짚신, 다른 한 켤레는 발막신 입니다. 발막신은 고급 가죽으로 만든 신으로 앞코가 둥글고 넓적한 모양입니다. 이제 씨름꾼 복장을 들여다보고 신발 주인을 찾아봅시다. 갑의 옷소매는 짧아 오른팔이 드러나는 반면 을의 옷소매는 팔이 모두 가려집니다. 또 갑과 달리 을은 행전을 차고 있습니다. 행전이란 바짓가랑이를 좁혀 행동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에 매는 물건입니다. 갑보다 을의 복장이 발막신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나요? 그림의 10시와 12시 방향 사이에는 여덟 명의 남성이 앉아 있습니다.. 대부분 소매가 긴 옷을 입고 갓을 지니고 있어 양반 신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각기 씨름 경기를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중 11시 방향에는 갓을 벗은 채 바닥에 포개어 두고 긴장한 표정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경기장에 더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은 발막신까지 벗어 옆에 가지런히 두고 양무릎을 모아 손깍지를 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씨름은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경기에서 이긴 사람과 그 다음 사람이 붙는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후보 씨름꾼 힘 좋은 갑과 겨을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한 듯 합니다. 12시와 2시 방향 사이에도 다섯 명의 남성들이 씨름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어 서민들로 보입니다. 4시 방향에 있는 신발을지나 5시 방향에는 한쪽 손을 뒤로 짚은 채 몸을 뉘어 경기를 지켜보는 두 남성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데요. 왜일까요? 그 이유는 그림에 그려진 씨름 기술 들배지기 있습니다. 을의 왼다리가 들려 있는 상태에서 갑이 자신의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을은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 겁니다. 그럼 그가 넘어지는 방향이 바로 두 남성이 앉아 있는 위치입니다. 자칫하면 자신들 쪽으로 넘어올 것 같은 씨름의 역동적인 모습에 놀란 것 같네요. 다음 6시와 8시 방향 사이에 어린아이와 세 명의 남성이 앉아 있습니다. 양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경기에서 지고 있는 을과 아는 사이인지 마냥 웃지 못하는 표정입니다. 6시 방향에 있는 어린아이는 왼쪽을 쳐다보고 있는데요. 그곳엔 엿장수가 서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경기보다는 엿에 더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9시 방향에서 있는 엿장수는 표정이 좋습니다. 씨름판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엿이 잘 팔릴 것 같은 기대감에 흐뭇한 표정입니다. 씨름꾼의 힘과 열띤 좌중의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전해진 씨름이 있습니다.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서당'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두 번째 서당 있니다. 조선시대 아이들이 공부를 하던 서당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한문을 을 가르쳐 주시는 훈장님과 그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홉 명의 학동이 그림에 등장합니다. 그림에서 오른쪽 상단에는 훈장님이 그 양 옆으로는 학동들이 둘러 앉아 있습니다. 원을 그리듯 앉아 있는 모양입니다. 훈장님은 책상이 있고 훈장님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벼루가 왼쪽에는 회초리가 있네요. 학동들은 바닥에 책을 펼치고 앉아 있습니다. 훈장님의 책상 앞에는 한 아이가 종아리를 부여 잡고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숙제를 하지 못 했는지 훈장님께 회초리를 맞은 것 같네요.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훈장님은 웃음을 애써 참는 듯 일그러진 표정 입니다. 그림에서 왼쪽에 있는 세 명의 학동은 매 맞은 친구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다섯 명의 학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중간에 있는 학동은 입을 크게 벌리며 친구의 상황을 비웃고 있네요. 단원 김홍도 세심한 관찰력이 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학동들의 머리 모양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아홉 명의 학동 중 여덟 명은 길게 기은 머리를 곱게 따왔습니다. 이는 미혼 남성을 뜻 합니다. 그런데 훈장님 기준 왼쪽에 는 학동은 혼자 갓을 쓰고 있습니다. 머리를 올려서 묶은 것인데요. 이는 기혼 남성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이른 나이에도 장가를 갔기 때문에 서당에서 올림머리 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훈장님께 혼난 친구와 그런 친구를 보며 웃는 유쾌한 상황을 담은 그림 서당이었습니다.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무동'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세 번째 무동 입니다. 무동은 춤출 무자에 아이 동자를 써서 춤 추는 아이를 말합니다. 춤추는 아이 한 명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여섯 명으로 총 일곱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가운데를 비워두고 악사들이 안정감 있게 그림의 가장자리를 따라 기역자로 꺾여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 아래 7시 방향에는 무동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무동을 설명하겠습니다. 무동을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은 자신의 머리 위로 올리고 있습니다. 왼발로 땅을 차고 오른발을 힘껏 들어 올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역동적인 자세를 통해 우리까지 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표정을 한번 볼까요? 춤추는 아이의 동그란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춤을 추는 것이 아주 신나 보이네요. 다음은 무동의 선 표현입니다. 다른 악사들은 일정한 선으로 그렸지만 무동을 그린 선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춤 때문에 옷이 휘날리는 것을 잘 담아냈네요. 얇은 선으로 그려진 다리는 무동의 가벼운 발놀림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는 악사들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악사는 앞서 말했듯 기역자 모양으로 여섯 명이 배치돼 있습니다. 상단 가로에 네 명이 세로에 두 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로에 위치한 악사들 중 가장 왼쪽의 악사는 북걸이에 매단 북을 둥둥 치고 있네요. 그 옆 악사는 양반다리를 한 채 자신의 다리 위에 장구를 올려 치고 있습니다. 갓으로 얼굴이 반쯤 가려진 이 악사는 양팔로 힘차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두 악사는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왼쪽의 악사는 향피리 삐딱하게 물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악사는 향피리보다 가느다란 새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가는 피리를 힘껏 부느라 빵빵해진 볼이 인상적이네요. 다음 세로에 위치한 악사들 중 위에 있는 악사는 대금을 불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있는 악사는 해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해금 악사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뒷모습을 보이고 있어 갓을 쓴 뒤통수와 해금 윗부분을 잡은 손이 전부 입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은 조선을 대표하는 삼현육각으로 국악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악기 편성법 있니다. 전통 악기가 만들어내는 신명나는 장단 덕분에 무동이 더욱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절로 어깨춤이 나는 무동이 있습니다.
(자막. [마상청앵도] 출처 국가유산청)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면 그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러가 보실까요?

(자막. 3 단원 김홍도 이야기)

"자네 파직일세!" "그래, 좋소! 나는 이제 자유인요!"
김홍도가 파직을 당했네요. 파직을 지위를 잃는 것인데, 왜 좋다고 하는 걸까요?
(자막. 연풍향교. 출처 괴산 군청)
단원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을 그린 이후, 종 6품 연풍현감이 됩니다. 이는 중인 신분인 도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보직이 있습니다. 연풍현감은 고을 원님으로 마을을 다스리는 행정업무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단원 김홍도가 평생 그림만 그렸다는 것 입니다.
(자막. 연풍향교. 출처 괴산 군청)
그가 현감이 된지 3년째에 이루어진 감사에서 과부 중매 ,토끼 사냥 등의 이유로 파직하고 되었습니다.
(자막. 파직)
하지만 이는 오히려 김홍도 인생에서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막. [병진년화첩] 中 '도교도' 출처 국가유산청 / [병진년화첩] 中 '백로횡답도' 출처 국가유산청)
김홍도는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자연과 백성의 삶을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궁정화가 때 그렸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서정적이고 담백한 그의 그림들은 가슴을 더욱 울리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날 만약 파직되고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막. [병진년화첩] 中 '섭우도' 출처 국가유산청)
대한민국 보물인 병진년 화첩을 못 보게 되었을 수도 있겠죠. 그는 화려한 감투 다 그만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요?

(자막. [단원 풍속도첩] 中 '씨름'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 [단원 풍속도첩] 中 '서당' 출처 국가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어떠셨나요. 저도 우리의 문화재를 소개해 드릴 수 있어 굉장히 즐거웠답니다. 우리나라 미술사의 큰 획을 근 단원 기홍도 오늘의 문화재를 기억하며 리트리버와 떠나는 문화재 여행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리트리버 있습니다. 왕왕!